(서머리 책요약) 현대 기독교 선교 - 존 스토트 (10)
4장 성서적 구원관
‘선교’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세계 속으로 보내사 수행하도록 하신 일을 지칭한다.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화’이다. 복음화란 예수에 관한 하나님의 희소식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복음화와 밀접하게 관계된 한 활동으로 ‘대화’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하나의 담화를 가리킨다. 대화는 상호 이해에 목표를 둔 것으로 그 자체가 이미 떳떳한 하나의 활동이다.
회개와 신앙을 통한 이러한 굴복이 구원의 길인데 우리가 네 번째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 구원이란 단어이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원의 중심점을, 기독교를 구원의 종교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계속 찾아 구출해 오셨고 구원의 주도권을 잡아오신 하나님이시다. 예수의 선교는 구원선교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있는 구속 행위들의 역사, 즉 구속사이다. 실로 성경은 과거의 연대기록 이상의 것이다. 구원과 신체의 건강, 첫째 구원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원의 경험 뒤에 더 나은 건강이 흔히 뒤따른 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리의 새생명은 흔히 신체적 정서적 안녕의 새로운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구원의 완성단게에 하나님 께서 우리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전체 피조물을 구속하실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완전한 최종 구원이라 해도 옳을 것이다.
구원과 정치적 해방, 두 번째 부정적 측면, 즉 구원은 사회정치적 해방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구원은 죄와 그 모든 결과들로부터 개인들을 풀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이다’고 진술하였다. 저자는 이제 곧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들과, 모든 형태의 압력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이 창조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람직한 목표일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은 동정과 선의를 지닌 타인들과 함께 그것을 추구함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나에 관하여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뉘우치고 우리 자신과 서로서로 에게 도전을 주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인종관계, 지역사회 건강, 개발 등 그리스도를 위한 이러한 숱한 영역에 자신을 던져 참여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해방의 신학, 저자는 ‘불행, 불의 및 착취에 대항하는 투쟁 그 너머에, 또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는 목표가 있다’고 계속 촉구한다. 그는 이것이 맑스주의적이며 동시에 성경적인 표현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용어는 동일하나 그것이 사용된 의미가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 조금도 당혹한 기색을 보이 지 않는다. 해석학적인 문제,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새롭고 보다 나은 사회의 창조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호의 임은 명백하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그를 통하여 세상에 제공하시는 구원을 구성 하는 것이 아님을 첨가해 둘 필요가 있다.
현대의 에큐메니칼 서적에 대하여 왜 이런 심각한 불안을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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