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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리 책요약) 현대 기독교 선교 - 존 스토트 (11)

by Peirasmos 2018.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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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리 책요약) 현대 기독교 선교 - 존 스토트 (11)





  현대의 에큐메니칼 서적에 대하여 왜 이런 심각한 불안을 느끼는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해석학의 문제이다. 신구약성경을 다루되 마음대로 해석하니 불안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성경의 불편한 부분은 삭제하고 임의로 선택하거나 또 어떤 때는 미리 조작한 이론을 지지하기 위하여 편리해 보이는 것을 곡해하는 극히 거만한 경우가 있다.


  구원을 사회적 해방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시도에 대하여 하나 더 지적해야 할 주석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도들이 신약에서 종들에게 제시하는 교훈들과 관계된 것이다. 구원과 개인의 자유, 그렇다면 구원이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로잔언약이 표현하는 대로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책임들의 전체성 속에서 우리를 변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신약의 구원 교리를 고찰하되 흔히 그렇듯이 세 가지 국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각가의 경우 부정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이 어떻게 상호 보완 하는가를 주목해 보라. ’해방‘은 ’구원‘의 좋은 번역이다. 


  그것이 좋다는 것은 해방 받은 자들이 들어가게 되는 자유 를 암시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심판으로부터 양자에로의 자유, ‘구원’은 과거의 국면에 있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실제적으로 객관적으로 죄인들이었으나 이제 나쁜 감정과 양심을 야기시키던 우리의 죄책이 값없이 제거 받았다.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유는 그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논리적인 사상의 연속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진노를 연결시킨다. 우리의 심판자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성령 자신은 우리로 ‘아바 아버 지’라 부르도록 해주시며, 그리함으로써 우리가 그의 자녀들인 것을 우리 영혼에 증거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노예들이 아니라 아들들이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들로서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자아로부터 봉사에로의 자유, 에큐메니칼의 주장은 이런 식인 것 같다. 즉 신약에 의한 구원은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인 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이나 구원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추론은 신학뿐 아니라 논리학에 있어서도 결핍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이런 말과 흡사하다. 즉 운동은 사람을 적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사람을 적합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나 운동이다. 


  이 현재적 구원개념에 있어서 우리는 또한 적극적인 면을 강조해야 하다. 우리는 자기 중심의 구속 으로부터 벗어나서 봉사의 자유에로 구원 받아가고 있다. 부패로부터 영광에로의 자유,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의 선물임과 동시에 하나의 계속적인 과정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역시 우리 기독교인들의 소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구원받을 소망 속에 구원 받았으며 ‘구원의 소망’은 기독교 군인이 써야 할 투구이다. 


이 궁극적 구원은 무엇인가? 


  우선 그것은 장차 올 진노로부터의 구원이 될 것이다. ‘우리 몸의 구속’을 포함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선포하는 것을 나타내야만 한다. 우리의 구원 메시지는 우리가 변화된 생활과 생활양식에서 구원의 증거를 주지 않으면 맹인의 귀에 웅웅거릴 뿐이다. 이것은 누구보다 복음의 설교자에게 더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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