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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존스토트

(서머리 책요약) 현대 기독교 선교 - 존 스토트 (1)

by Peirasmos 2018.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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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독교 선교 요약(존 스토트)





1장 성서적 선교관

  세계 선교 및 전도 위원회까지도 그 헌장에서 ‘선교’와 ‘전도’를 구분하지 않고 그 목적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 목 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세계에 널리 전파하여 만인으로 그를 믿고 구원얻게 함에 있다.”이는 전폭적으로 복음전도만을 함의하는 이 전통적 선교관의 극단적인 형태는 구두 선포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선교관을 고수하는 자들은 대개 교육과 의료사업을 정당하게 보며 흔히 무지자들과 병자들에 대한 기독교적 연민 의 정의 발로로 인하여 교육과 의료사업을 복음사업의 매우 유익한 부속품으로 생각했다. 심지어는 병원과 학교가 환자들과 학생들을 복음을 듣기 위하여 나포된 청중들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전도에의 ‘현관’내지 ‘발판’으로 생각 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선교 자체는 전도의 의미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통적인 견해는 현재 사장된 견해는 아니다. 소위‘예수 운동’이란 것이 기독교 공동생활 집단의 형성을 조장했고 그 집단에 들어가는 열광적 젊은 복음주의자들은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은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세상 거부적인 비판주의는 소위 하나님을 믿는 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이상한 현상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극단적인 견해로는 표준적 에큐메니칼 견해가 있다. 전개된 주제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역사과정 속에서 활동하신다는 것과 그의 선교, 즉 ‘하나님의 선 교’의 목적은 사회 조화적 의미에서의 ‘샬롬’의 건설이라는 것과 이 ‘샬롬’이 “유색인종의 해방, 노사관계의 인도화 에 대한 관심”등으로 예시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차례 그것이 미래적 소망의 표현이 아닌 현재적 실재의 표현으 로, 우주의 최종적 회복이 아닌 “사회 및 정치 변혁의 가속화”의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선교와 사회혁신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의 할 말은 무엇인가? 네 가지 비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또한 역사의 심판자이시라는 점이다. 

둘째, ‘샬롬’의 성서적 범주들과 새로운 인간성과 하나님의 왕궁은 사회개혁과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셋째,‘선교’란 단어가 하나님께서 세계 속에서 하시는 모든 것을 포괄하 는 의미로 쓰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넷째, 웁살라대회가 사회개혁에 대한 관심에 몰두한 나머지 복음적 관심의 여 지를 거의 혹은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상위임령을 고찰해 보면 이는 단지 예수께서 전에 명하신 모든 것을 회심자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의무를 포함 하는 것에 불과하다거나, 사회적 책임이 그 명령 중에 포함되어 왔다고만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성자의 선교로부터 추론적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선교는 그의 선교처럼 섬기는 선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자기 지위를 비우사 종의 형체 를 취하셨다. 그의 겸손한 마음은 우리 속에 품어야 할 마음이다. 그 다음에 교회의 선교에 필적할만한 성자의 선 교 중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그는 섬기기 위하여 세계 속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는 외계로부 터 온 방문자처럼 세계를 스치고 자나가시거나 이방인처럼 자기 자신의 이방문화를 가지고 도착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인간성을 스스로 취하시고 우리의 살과, 피, 우리의 문화를 취하셨다. 심지어 우리의 죄를 짊어지 시고 우리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리고 이제 그는 우리를 ‘세계 속으로’ 보내사 그가 그랬듯이 우리도 타인들과 동일 시하게 하시며, 그가 그랬듯이 우리를 상할 수 있는 환경에 두신다.



:: 루미바이블은 널직한 시선으로 삶을 '이해' 해보려는 넉넉한 시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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