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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토마스오덴

책리뷰 목회신학 토마스오덴 (8) - 전례

by Peirasmos 2018.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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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목회신학 토마스오덴 (8)





6) 전례 인도의 원칙


  첫째, 우리가 경배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배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둘째, 예배는 그 내적 실체를 설명할 수 있는 외적인 체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질서없는 정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경험이 많은 집례자는 반복하여 사용되어 온 안내판과 우리에게 익숙한 길을 특별히 존중한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공동체로 하여금 역사적인 경험과 초시간적 연속성을 상기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현대의 종교적 열망에 감염된 과장된 형태의 변덕과 신기한 것을 찾으려는 태도를 이겨내야 한다. 동시에 슬기로운 개혁의 시도를 활용하는 것은 잊지말아야 한다. 

  

  넷째, 순서가 고정적으로 짜여 있고 반복적인 회상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예배라 하더라도 예배의식 자체는 마치 매일 아침의 이슬 방울처럼 항상 새롭게 찬양하는 행위여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그리스도교 예배에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대표적 집례자로서의 목회자는 집단 예배와 개인 예배를 위하여 먹이고 양육하며 환경을 조성할 행복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여섯째, 하나님을 경배하는 그리스도교 예배는 침묵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또한 말이 없어 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교 예배자들은 침묵의 훈련과 묵상의 기도, 그리고 고요함 중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곱째, 오직 음악만이 예배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다. 


 

 7) 목회기도의 개선


  목회기도 가운데서 예배인도자는 모인 공동체의 집단적인 목회방향을 제시할 뿐만 아니 라 공동체 안의 개인들의 기도생활의 방향도 제시한다. 


  8) 기도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들 


  (1) 기도는 단순히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기도할 때 실제로는 바로 우리 자신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 기도는 하층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이나 참호 속에 있는 병사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기도가 어떤 점에서 강자에게 소용되는 것인가? 


  (3)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우리가 원하고 있는 것 또는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을 꼭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나님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지는 않을까? 

  (4) 과학적인 교육은 기도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기도는 자연법칙과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5) 기도는 불굥평한 것은 아닌가? 기도는 때로는 부당하게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아닌가? 


  (6) 글로 작성해 놓은 기도는 성령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가? 


  기도는 결코 자기 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자기 기만의 단층들을 도려내버리고 순수한 자신을 드러내고 솔직한 자아평가를 내리게 된다. 연륜과 경험에 따라 기도가 변하고 있으나 기도는 모든 변화를 초월하고 포괄하는 유일하신 분에게 드려진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 때문에 기도가 필요없기는 커녕 신적 전능성 그 자체는 기도를 필요하고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속화된 고도 기술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고 계속 믿고 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뜻에 확신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얻기 위하여 부르짖는 것이다. 기도에 대해 사전의 준비를 해두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한다고 하는 것은 광신자들의 생각이다. 성령은 훈련, 이성, 반성, 또는 조직을 통하하여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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